상담실 이야기

죽고싶은 당신에게(에큐메니안 연재글. 한선영)

작성자
느낌
작성일
2024-03-30 13:32
조회
39











죽고싶은 당신에게(에큐메니안 연재글. 한선영)


오늘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상담 장면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저의 내담자들 중에는 죽고싶은 마음과 사투를 벌이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가족이나 친구의 예기치 않은 죽음에 오랜 기간 고통스러워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오래전부터 상담실에서는 초기 면접 상담에서 아예 자살사고와 시도 경험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상담실은 곧 작은 사회입니다. 사회와 상담실의 차이는 이미 존재하는 현상들이나 경험들을 드러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상담실에서는 바깥에서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주제들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바로 그러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얼마 전 한 내담자와의 상담에서 죽음의 종류를 낱낱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가족 2명을 잃은 성인이었죠. 자연사, 돌발사, 사고사, 병사, 자살, 재난사 등 죽음의 종류를 짚어가면서 '또 뭐가 있드라?' 이렇게 질문하며 무겁지 않게 죽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떻게 죽고 싶은가?"

이 질문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만큼 중요한 물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 만큼이나 죽음도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실제(reality)이기 때문입니다. 삶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중요한 한 면을 모른 척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 옆으로 가까이 데리고 와서 수용 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삶을 온전히 향유하는 것입니다.

저의 내담자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고싶다고 하시더군요. 그 바램 안에는 가족 2명을 아깝게 잃은 슬픔이 녹아있고,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자 하는 삶에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니 저의 크게 다르지 않네요. 저도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살다가 수명이 다하여 죽고 싶습니다. 제가 살고 싶은 삶은 저란 존재를 통해 누군가가, 그리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 일이 지금은 상담이지만 혹 다른 일이어도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로 힘든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세상에 기여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을 할 때 저는 제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며,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네, 지금 저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 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삶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 3세대 인지행동치료 중 하나인 수용전념치료(ACT)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당신은 어떻게 살고싶은가?'를 묻습니다.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이죠. 가치에 기반한 삶은 어떤 직업인가, 얼마나 소유했나, 어느 학교인가 등은 수단이 됩니다. 많은 정신병리는 이런 수단들이 삶의 가치와 목적이 된데서 생겨납니다.

실존주의에 영향을 받은 폴틸리히는 불안에는 '실존적 불안'과 '병리적 불안'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실존적 불안은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수용하고 마주하는데서 오는 불안입니다. 실존적 불안은 껴안을 수록 성숙해집니다. 즉 수용하고 가까이 마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병리적 불안은 죽음을 부인하고 회피하는 데서 생깁니다. 언제까지나 지속될거라고 믿으며 자신만의 바벨탑을 쌓는 행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에 폭식적으로 성공하고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이 병리적 불안의 반증입니다.

살아있는 장례식

죽음과 관련한 저의 또 다른 희망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죽기 전에 몸과 마음에 아직 힘이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존재인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또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이라 하던대로 잘 살아가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가족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 좋겠고, 긴 시간동안 마음을 나눠온 친구들도 소수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 동안에는 평소 잘 듣는 음악도 틀고, 좋아했던 그림들이 공간에 놓여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그득해지네요. 책 '모리의 화요일'에 나오는 살아있는 장례식 장면을 살짝 컨닝했습니다. 모리가 죽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 친구, 제자들을 불러 소중한 시간을 갖는 장면이었죠. 이 장면에 감동을 크게 받아 ''살아있는 장례식 플래너'가 되고싶다는 꿈이 생겼답니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는 터라 그게 현실이 될런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

의 글의 막바지에 와서 이 글을 쓰려고 한 이유인, 죽고 싶은 마음이 순간순간 들이닥치는 분들에게 부족하지만 조심스레 저의 마음 한 자락을 건네봅니다. 당신처럼 참 선하고 좋은 사람이, 순하고 여린 사람이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면 그 만큼 그동안 상당히 고통스럽고 힘들었다는 말이겠지요. 그렇지만 않다면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쭉쭉 뻗어나갈 나무 같은 사람이 바로 당신일텐데 말입니다.





이런 사람

쭉쭉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나무 같은 사람,

막힘없이 흐르고 큰 돌도 쉽게 지나가는 냇물 같은 사람,

마음맞는 사람과 와하하 웃으며 장난치는 사람,

그러다 여린 생명을 만나면 그 곁에 가만히 머무는 사람,

당신은 원래는 이런 사람

지금도 여전히 이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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